‘탐정업’ 내달 5일부터 개업 가능… 법조계는 ‘우려’ 목소리
아직 공인된 자격 없어 거의 기존 ‘흥신소’ 이름만 바꿔
다음 달 5일 탐정제도 본격 시행을 앞두고 법조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과도하거나 위법한 증거 수집이 횡행할 경우 국민의 사생활 침해 위험이 커질 뿐만 아니라 변호사 자격이 없는 비(非)전문가들이 사건 관련 합의 종용 등 불법행위를 저지를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지난 2월 신용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신용정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신용정보회사 등이 아닌 개인은 다음달 5일부터 탐정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거나 탐정업(민간조사업)을 할 수 있게 됐다.
탐문이나 관찰 등을 통해 증거를 수집하고 사실관계를 조사하는 탐정은 과거에도 교통사고나 보험사기, 이혼 등의 사건에서 암암리에 활동해왔다. 하지만 국내에선 탐정의 명칭과 탐정사무소를 개업할 수 없어 흥신소 등의 형태로 운영됐다. 탐정업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4개국 중 우리나라를 제외한 모든 국가에서 이미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통상 수사경력이나 3년 이상의 조사보조원 경력이 있으면 탐정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일본도 신고제로 탐정업을 허용하고 있다.
탐정업이 허용되면 탐정들이 수사기관의 수사결과나 법원 판결을 뒤집는 결정적 증거를 찾아내 사건관계인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크다.
지나친 탐문·조사 행해져도
관리·감독 시스템 부재
먼저 탐정이라는 호칭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지만, 아직 공인된 탐정 자격 제도가 없어 탐정업이 난립할 것이라는 문제가 있다. 또 탐정들이 과도하거나 위법한 조사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이를 관리·감독할 기관이 정해지지 않아 제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승우(44·사법연수원 37기) 법무법인 법승 대표변호사는 "아직 탐정과 관련된 공인 자격 제도가 없어 기존 흥신소들이 '탐정사무소'로 이름만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라며 "탐정에 대한 도덕적 믿음이 없어 오히려 탐정업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위법한 증거수집 횡행 땐
국민 사생활 침해 위험 커
오지은(39·변호사시험 4회) 법률사무소 선의 대표변호사는 "형사사건에서는 증거가 중요하게 작용하는데 탐정업이 활발해진다면 증거없는 사건에 대해 증거를 만들어오거나 민감한 자료를 녹취, 녹음하는 등의 위법한 증거 수집 사례가 늘어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전직 경찰들이 탐정업에 뛰어드는 사례가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전·현직 경찰의 유착관계로 또다른 '전관예우 폐해'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특히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수사권이 커지면, 이를 이용해 전·현직 경찰들이 수사정보를 암암리에 교환할 가능성이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김현(64·17기) 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의 정보수집 능력이 확대되면서 전직 경찰인 탐정들이 이를 이용해 무리하게 정보를 가져오려고 시도할 수 있다"며 "이런 식으로 경찰이 탐정에게 과도한 정보를 전달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국민들이 피해를 입을 수 있다"고 말했다.
전직 경찰도 합류 전망
전·현직 경찰 유착 문제 막아야
서초동의 한 변호사도 "특수수사 등을 담당했던 전직 경찰 일부가 이미 대형로펌에 스카웃 돼 패럴리걸(Paralegal, 법률사무보조원) 등으로 일하면서 공판 전 조사 업무를 이행하고 있다"며 "탐정업의 확대로 형사사건의 수사정보를 무리하게 입수하려는 시도가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탐정들이 조사·탐문 역할에 그치지 않고 사건관계인들과 접촉해 합의를 종용하는 등 불법행위를 할 우려가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변호사는 "개정법이 시행되기 이전부터 이미 흥신소에서 사건 관련 조사자료를 만들고 변호사를 소개해주는 일이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었다"며 "탐정업이 공식화되고 탐정들의 활동 영역이 확대될 경우 조사나 탐문에서 그치지 않고 사건 상대방과의 합의나 협상을 종용하는 등 사건 해결에 개입하거나 불법적으로 법률업무영역까지 손댈 가능성도 커 철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