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법 판결
매수인이 잔금을 내지 않아 매매계약이 해제됐음에도 해당 부동산에 대한 처분금지 가처분을 신청해 소유자인 매도인의 토지 처분을 지연시켰다면 그에 따른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72단독 노미정 판사는 A씨 등 5명이 금속제조업체인 B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소송(2020가단5068338)에서 최근 "B사는 총 68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일부승소 판결했다.
경기도의 한 토지를 공유하고 있던 A씨 등은 2017년 8월 이 땅에 공장을 짓겠다는 B사에게 땅을 넘기기로 하고 매매계약을 맺었다. 매매대금은 15억원이었지만 B사는 잔금지급 기일이 지날 때까지 계약금과 일부 잔금을 합한 7억여원만 지급했다. 이에 A씨 등은 서면 등을 보내 세 차례에 걸쳐 잔금 지급을 독촉했지만, B사는 끝내 잔금을 치르지 않았다. 결국 A씨 등은 2018년 1월 계약을 근거로 1억5000만원의 계약금을 제외한 나머지 5억6000여만원을 B사에 반환하고 계약을 해제했다.
한편 B사는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이 토지에 공장을 건축하기 위한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취하했고, 인근의 다른 토지를 매수해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쳤다. 그런데 B사는 그 사이 A씨 등을 상대로 매매계약 해제 무효를 주장하면서, 부동산처분금지 가처분 신청을 해 인용 결정을 받고 가처분 기입 등기를 했다. 하지만 B사는 2019년 8월 본안소송에서 패소했고, 가처분 기입 등기는 해제됐다. 이에 A씨 등은 "B사의 가처분은 피보전권리 없이 행해진 위법한 불법행위"라며 "가처분 기입 등기가 마쳐진 때부터 집행해제 된 때까지 토지에 대한 담보대출금 이자 등 토지 처분지연에 따른 손해를 배상하라"며 B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매도인의 토지 처분 지연 따른
손해배상 해야
노 판사는 "가처분 집행 후 집행채권자가 본안소송에서 패소로 확정됐다면 그 보전처분의 집행으로 인해 채무자가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특별한 반증이 없는 한 집행채권자에게 고의 또는 과실이 있다고 추정된다"며 "따라서 부당한 집행으로 인한 손해에 대해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B사가 잔금 지급의무를 끝내 이행하지 않고 가처분 신청 전에 토지에 관한 개발행위허가 신청을 취하하고 공장 부지로 사용할 다른 토지에 관한 매매계약까지 체결한 점 등에 비춰볼 때 과실 추정을 번복하기 부족하다"며 "A씨 등은 가처분이 계속되는 동안 토지를 매도하지 못했기 때문에 가처분 집행과 토지에 대한 처분 지연 사이에는 상당인과관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B사는 본안소송에서 패소했기 때문에 가처분 집행으로 인해 A씨 등이 입은 손해에 대해 B사의 고의·과실이 추정된다"며 "B사는 A씨 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