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에서 장비 점검업무를 하는 협력업체 직원들은 파견 근로가 아니므로 현대차 근로자로 볼 수 없다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고법 민사1부(재판장 윤승은 부장판사)는 현대차 협력업체 근로자 21명이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등 소송(2018나2062639)에서 최근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1심을 취소하고 원고패소 판결했다.
재판부는 "남양연구소에는 1만여명에 달하는 현대차 소속 근로자들이 근무하고 있는데 대부분은 연구직 근로자"라며 "협력업체 직원들이 주기적으로 실시하는 장비 예방·점검 업무와 남양연구소의 주요 업무인 연구·개발업무는 명확히 구별돼 작업량, 작업 내용 면에서 연동될 여지가 없고 대체 가능성 또한 전혀 없다"고 밝혔다.
남양연구소는 현대차 소속
대부분 연구직 근로자
이어 "현대차 소속 근로자 중에는 기계나 설비 등의 관리 업무를 담당하는 기술직 근로자도 있지만, 협력업체 직원들이 한 예방·점검 업무는 현대차 소속 기술직 근로자들의 업무와도 구별된다"며 "협력업체 직원들은 현대차 소속 근로자와 함께 작업하거나 그들의 업무를 대신하기도 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업무를 일시적으로 돕거나 개인적인 친분 관계에 따라 지원한 정도로 보이고, 구조적·상시적으로 현대차 소속 근로자들과 하나의 작업 집단으로 구성돼 공동 작업을 했거나 그들의 업무를 대신했다고 보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협력업체 직원은
주기적으로 장비 점검이 주임무
그러면서 "근로자 파견 여부와 관련이 있는 것은 현대차가 개별 근로자들을 구체적으로 지시·통제했는지 여부에 있다"며 "예방·점검 업무에 필요한 인원수는 관련 업무가 확대됨에 따라 증가했고 그 인원 내에서 근로자 채용과 근로자별 작업배치와 보직변경은 협력업체가 스스로 했다는 증언이 있었는데, 이와 달리 현대차가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세부적인 작업까지 관리·통제하거나 구체적인 작업 지시를 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시했다.
현대차 남양연구소에서 일하던 협력업체 근로자 21명은 지난 2015년 9월 자신들은 파견근로자이고 현대차가 사용사업주에 해당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현대차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협력업체에 고용된 후 현대차 남양연구소에 파견돼 현대차로부터 지휘·명령을 받는 근로자 파견 관계에 있었다며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손을 들어줬다.
연구개발과 확연히 구분
대체 가능성 전혀 없어
[ 해 설 ]
이번 판결은 그동안 현대자동차의 사내 하청을 불법이라고 판단했던 여러 사건과 달리 사실상 처음으로 현대차의 손을 들어준 사건이어서 주목된다.
대법원은 앞서 2015년 현대차 아산공장에서 일하던 협력업체 소속 직원들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2010다106436)에서 해당 근로자들을 현대차 소속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당시 대법원은 △도급인(현대차)이 수급인(협력업체) 소속 근로자의 업무수행에 관해 상당한 정도의 지휘·감독 명령을 내리는지 △도급인 소속 근로자와 수급인 소속 근로자가 함께 직접 공동 작업을 하는지 △수급인 소속 근로자의 근무를 누가 관리하는지 등을 기준으로 진정한 도급과 위장 도급을 구분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했다.
이번 판결도 이 같은 대법원의 기준에 따라 이뤄졌는데, 크게 쟁점이 된 부분은 현대차가 협력업체 직원들에게 업무와 관련해 구체적인 지휘·감독을 내리며 현대차 시스템에 의한 통제가 이뤄졌는지와 현대차와 협력업체가 맺은 도급계약에 파견계약의 요소가 있었는지 여부다.
업무상 협력관계
도급계약에 따른 업무수행 인정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장비 점검업무를 위해 장비별 표준작업시간표나 월 점검계획을 작성해 현대차 담당팀에 송부했고 담당팀과 협력업체 근로자들은 점검 희망일시를 조율해 업무를 수행했다.
재판부는 "협력업체의 점검 업무는 대상 시험장비를 사용하는 각 팀의 업무일정에 따라 수행되는 면이 있지만 이는 시험장비가 있는 곳에서만 업무를 할 수 있고 경우에 따라 시험장비를 운용하는 측에서 입회해야만 점검을 할 수 있거나 가동 중인 시험장비를 대상으로 해서는 점검을 할 수 없는 업무의 특성에서 비롯된 업무상 협력 관계로 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예컨대 이 사건의 협력업체 직원들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이용한 공정에서처럼 협력업체 근로자들의 업무 내용이나 근무·휴게시간이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을 관리하는 현대차에 의해 통제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현대차가 협력업체에 작성하게 한 점검표 또한 업무에 대한 구속력 있는 지시를 내린 파견적 요소가 아니라 도급계약에 따라 수행해야 할 업무로 봤다.
재판부는 "점검표에는 점검 항목별 포인트와 기준이 기재돼있으나 이는 기초적·기본적인 점검 사항에 불과할 뿐만 아니라 예방·점검이라는 추상적인 분야에서 현대차가 필요로 하는 부분이 보다 효율적으로 수행되도록 업무를 구체적으로 지정하거나 계약 이행에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업무 수행 결과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이를 업무 수행 자체에 관한 구속력 있는 지시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어 "일반적인 도급에서도 수급인이 제공할 일 또는 완성해야 할 성과가 개별 사항마다 상세하게 합의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이처럼 협력업체 직원들의 업무와 수행과정 등은 도급계약에 의해 가능한 부분이며, 이 같은 업무가 원계약에 의해 이행되는 것을 파견적 요소로 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