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받은 땅에 빗물 배수시설인 우수관이 매설돼 있었다면 상속인은 지방자치단체에 우수관 철거를 요구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나왔다. 소유자가 자신의 토지를 일반 공중의 이용에 제공한 경우에는 토지에 대한 소유자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이 제한된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판결이다.
1995년 아버지로부터 땅을 상속받은 A씨는 2013년 지하에 있는 우수관 관리주체인 용인시를 상대로 "우수관을 철거하고, 차임 상당의 부당이득 2500여만원을 달라"며 소송을 냈다. 이에 용인시는 "A씨의 아버지가 우수관 매설 당시 토지 소유자로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을 포기했으므로 이수관 사용은 정당하다"고 맞섰다.
앞서 1심은 "우수관과 오수관이 장기간 매설돼 있다는 사정만으로 A씨의 아버지가 토지에 대한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을 포기했다고 볼 수 없다"며 원고승소 판결했다.
반면 2심은 "A씨의 아버지가 우수관과 관련해 토지에 대한 독점적·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을 포기했고, 상속인인 A씨도 그러한 제한이 있는 토지를 상속했다"며 우수관를 철거해달라는 A씨의 청구를 기각했다.
A씨의 상고로 사건을 맡게 된 대법원은 독점적·배타적인 사용·수익권 포기에 관한 대법원이 1973년 판례를 그대로 유지해야 할지를 판단하기 위해 사건을 대법원장과 대법관 12명이 심리에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24일 A씨가 자신이 상속받은 땅에 설치된 우수관 및 오수관(오물 배수시설)을 철거해 달라며 용인시를 상대로 낸 시설물철거 및 토지인도 청구소송(2016다264556)에서 원고일부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1973년 8월 73다401 판결 이후 토지 소유자 스스로 그 소유의 토지를 일반 공중을 위한 용도로 제공한 경우에 그 토지에 대한 소유자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의 행사가 제한되는 법리가 확립됐다"며 "이러한 법리는 대법원이 오랜 시간에 걸쳐 발전시켜 온 것으로서 현재에도 여전히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기존 판례의 법리는 토지 소유자가 자신의 토지를 일반 공중의 사용에 제공함으로써 유·무형의 이익을 누린 것으로 평가되는 사안에서 관계자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형량하는 법리로서 기능해 왔다"며 "확립된 판례 법리를 폐기할 경우에 발생하는 규율의 공백에 대해 기존 판례를 대체할 만한 대안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조희대 대법관은 "사용·수익권의 포기는 소유권의 본질에 어긋나고, 실질적으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보상 없는 수용’을 인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대법원 판례를 전부 폐기해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김재형 대법관은 "독점적·배타적인 사용·수익권 포기에 관하여 ‘포기’라는 용어의 통상적인 사용례에 따라 ‘사용·수익권의 소멸’의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판례와, ‘상대방 있는 채권적인 행위’로 본 판례가 공존하고 있다"며 "사용·수익권 포기에 관하여 이를 ‘상대방 있는 채권적인 행위’로 본 일부 판례를 제외한 나머지 판례는 물권법정주의나 공시의 원칙, 법치행정 등 공·사법적인 관점에서 중대한 문제점이 있으므로 변경돼야 한다"는 반대의견을 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토지 소유자의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사용·수익권 행사의 제한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토지 소유자의 소유권 보장과 공공의 이익 사이의 비교형량’을 하여야 한다는 점을 최초로 판시한 사례"라고 설명했다.